세상에 외친다
2008/07/19 11:19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은 책을 읽는 중이다.
내일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뒷부분에 큰 반전이 있다거나, 흐름상에 커다란 변화가 존재한다거나, 끝까지 읽고 이는 감정자체가 바뀐다.' 라는 문제는 생길 것 같지는 않기에 일단 먼저 글을 쓰련다. (최대한 끝까지 읽고 가야할텐데 죄송합니다.)
이랜드 파업에 지지를 보낸다고,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한다고 쉽게 말은 많이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뼈 아픈 후회가 되었던 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지를 보낸다. 동참한다.'라는 말을 지껄였다는 거다.
이랜드 문제를 화제로 친구들과는 대화 도중에 다투기도 했고, 서로 다른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기도 했다. 사온 티셔츠를 보고 이랜드 계열사의 물건이다 안입겠다고 환불해오라고 한 동생이 '어우 쫌!' 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추한 '과시욕'이었다. 스스로를 위한 '위안'이고 '변명'일 뿐이었다. 고작 그것이 '지지'이고 '응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됐는데, 그것으로 나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합법적이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 이랜드 파업 전체를 향한 큰 선심인 듯 생각했고, 그걸로 눈 감아버리고 귀를 닫았던 것 같다.
언젠가 김규항이 태안에 대해서 쓴 글을 인용해 본다.
회사 게시판에 송년회 대신 태안에 가자는 글이 올라왔더군요. 제목만 보고 내용은 읽지도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보태야 인간이 벌려놓은 끔찍한 짓을 조금이라도 빨리 씻어낼 수 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태안 또한 우리 스스로 우리를 동원하는 것은 아닌가요? 새만금에 침묵하고 천성산, 부안에 고개 돌리던 우리가 비굴한 양심 끄트머리 한 올 먼지 털어내듯 그렇게 기름 걸레질하며 스스로 죄를 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달려가야겠다는 마음에 앞서 그런 자괴감이 먼저 밀려옵니다.
늘 공권력으로부터 안전한 순간에만 '연대' 하며 보호를 받는 '광장' 에서만 '촛불'을 들고 그들이 조장해 줄 때에만 '분노' 하던 그들이 아니었습니까?
그곳에 다녀오면 또 한동안 평온하게들 사시겠지요. 그 '광장' 에서 '연대'하며 '분노'했던 그 추억을 힘으로.
그야말로 '그들'에 내 이름 '신승희'를 넣어보면 딱 들어 맞는다.
언제나 문제는, 내 자신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말만 그럴싸한 겁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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