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얘기해요 2008/09/25 17:58

회사 사장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사장 지켰던 직원들은 저 멀리 지방 발령 혹은 비제작부서로.
퇴진에 앞장섰던 이들은 한자리씩 꿰찼다.
울팀도 뉴페이스가 왔는데 아... 정말 걱정된다.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다들 나가겠다고;;
일도 일이고 심란해 죽을 맛이다
원고도 다 뜯어 고치겠지? 아....................................어케해!

아일랜드로 간 언니에게 소포 붙였는데
내용물은 책 한권 + 햇반 5개 = 2만원이 안되는데
EMS로 보냈더니 배송비가 4만 천구백오십원이다. 잊혀지지도 않네.
배보다 배꼽이 크다니. 왜 아일랜드까지 갔단 말이냐!!
일반 우편으로 보내면 2만 몇천원이긴 한데 보름 정도 걸리는데다가 제대로 갔는지 확인도 안된단다.  아, 돈이 무섭다. 무서워.

유노 요 인간은 내 속 확 긁어놓고, 내가 니 직원이냐!!

정말 오늘 참 암울하구나. 날씨까지 왜이리 청승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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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암울

세상에 외친다 2008/09/23 14:00


 생리통이 평소 심한편은 아니다. 근데 이번 생리는 정말 휘몰아 친다. 이렇게 심하게 폭풍우가 일고 몰아칠 땐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끙끙 앓고 싶다. 생리 휴가는 꼭 필요한 제도임을 되새긴다.

 내 첫 생리는 열두살에서 열세살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다. 그러니까 꼬박 십오년을 채워온 셈이다. 작년 인간극장에서 일할 때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여름 내내 불순이었고(나중에 알게 된건데 그건 '하혈'이었다), 그걸 제외하면 꼬박 꼬박 달마다 대량의 피를 쏟아왔고 앞으로도 쏟을 예정이지 싶다.  

 생리통이 가장 심했을 때는 대학교 2학년때였다. 국토대장정을 빙자한 모 프로그램에 참여했기 때문에 20일 가까이 되는 날 동안 생리를 미루는 약을 먹어야 했다. 서울에 다시 도착해서 약을 끊고 생리를 시작했을 땐, 어찌나 통증이 심하던지. 이불을 쥐어짜도 나아지지 않고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때리고 데구르르 굴러도 좀 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잠잠해지지 않는 고통의 파도에, 평생 먹지 않을꺼라 결심하던 생리통 약을 먹어볼까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 여행하면 항상 난리가 났었다. 월경이 괜히 月경이냐. 멀리 가면 안된다고. 몸의 신이 나를 비웃는거 같았다.
말레이시아의 유스호스텔에서 흡수력 떨어지는 말레이시아 검정 생리대를 들고 바지가 피범벅이 됐던 그 순간은 아직도 내 인생 가장 아스트랄한 순간으로 꼽힌다. 

붉은 색은 금기의 의미한다. 하다못해 신호등도 '멈춤'이라고 말해주지 않던가. 이렇게 배를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공벌레처럼 온 몸을 말고 누워만 있고 싶을 땐, 수 없이 길고 긴 시간 격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나 생리한다고' 내색 한번 못하고 일상과 똑같은 노동에 투입됐을(그리고 되고 있는) 수십억의 여성들이, 그리고 그녀들이 겪어냈을 생리의 '기간'이 떠오른다.

겪어 봐야 안다. 겪어봐야 차별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고,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절대 겪어보지 못할 세상 절반의 인류에게 오늘따라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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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즐겨요/책책책~ 2008/09/21 16:22
얼마전 엽기민원님에게 생일 선물로 <대한민국 원주민 , 최규석, 창비 > 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겨레 21에 연재될 때 스케치한 듯한 약간은 거친 그림체와 담담한 듯한 톤이 맘에 들어 챙겨보곤 했습니다.

시사 주간지에 연재되는 만화라서 해당 잡지가 발행되는 시기의 이슈와 어떤 연관이 있는 작품이라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해석하곤 했었습니다. 지금보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해석했었나 싶군요.

자신이 기억하는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들, 가족들의 기억 속의 이야기들을 담담히 때로는 아프게 풀어냅니다.

작가는 저보다 두어살 많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와 저는 다른 시간을 산 듯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들을 다시 하나 둘씩 꺼내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억해낸 이야기들은 또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저의 가족들의 기억도 제 손으로 복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원주민"인 우리 할머니 세대,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하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제가 정리해보지 않으면 "대한민국 원주민"들의 이야기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주로 내려갈 때마다 부모님을 인터뷰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도 같이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우리가 써내려간 그들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보면 의미있는 일일 듯 합니다.

많은 고민을 하게 해준, 최규석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최규석 작가의 홈페이지도 방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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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얘기해요 2008/09/21 00:49

밑에 앙증양이 올린 글에 대해 나도ㅋ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다들 어찌나 염려가 많으신지
그 잘란 '씨', '대'를 이을 아이를 위해 치루는 희생은 모두 '모성', '사랑'으로 덮어진다.
갓난애 보느라 집 밖에 한 발자국 못나가도 - 애 엄마니까 당연.
육아휴직 못내고 제대로 애 맡길곳도 없어서 사표내면 - 애 엄마니까.
여성이 담배피면? - 나중에 애도 낳아야 하는데 그만 끊지
젠장. 애는 혼자 만드냐. 자궁은 안되고 정자는 괜찮은가보지?
생각해보니 이렇게 애만드는데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양반들이
왜 여성의 몸매에 그렇게 냉혹한지 모르겠다.
S라인? 섹시? 쭉쭉빵빵? 솔직히 애 생각하면 적당한 지방과 튼실한 하체가 좋은거 아니냐?ㅋㅋ 노출 심한 옷도 여성 건강에 썩 좋지 않을텐데 다 가리고 다니게 하지, 왜?ㅋ

그래. 나 아직 애 안나봐서 모른다. 나도 애 생기면 예뻐 죽겠지. 그냥 좋아라 하고 애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성은 덜렁 애만 낳는 '생산도구'가 아니란 말이다. 아이를 가지고 낳기까지, 그리고 키우는 과정에서 여성이 현실과 얼마나 많이 부딪혀야 하는지, 얼마나 타협하고 양보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같이 고민해줬음 좋겠다.
여성이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거, 참 미련할 정도로 자식에게 집착하고 애정 갖는거...
신파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캐릭터가 바로 우리집 엄마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여성에게 남는 게 자식밖에 없으니까. 내 꺼 다 버리고 내 꺼 다 주고 남은 건 자식 뿐. 남성은 안 그러냐고? 물론 아버지도 물심양면으로 갖은 고생하겠지만 솔직히 내 계산으로 볼땐 온갖 자질구레한거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일까지 대부분은 엄마 몫이다.
그래도 이 세상 엄마들은 얘기하지. 자신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너를 낳은 거' 라고... 에휴... 참... 나도 내 자식한테 이런 얘기를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래서 좋은 세상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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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얘기해요 2008/09/20 11:29


친구가 엄마가 됐다. .
엄마가 된 그네는 참 많은 변화의 직면한다. 그네를 만나는 나 역시참 많은 변화에 직면한다. 갓난 아이 때야 별 문제 없었다. '오, 젖주는 구나!', '오, 우유타는 구나!', '오, 목욕하는구나!' '오오오! 드디어 잠들었구나!' 엄지와 검지로 눈가를 잡을 정도의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문제는 아이가 두 다리로 서기 시작하면부터다. 위험과 비위험을 구분하지 못하는 몸뚱이가 제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얼마나 수 많은 위험이 그애를 기다리고 있는지. 두 살이 된 내 친구의 아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가게 테이블 모서리에 지 몸을 갖다 박고 울음을 터뜨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와 친구의 언니는 아기가 이뻐 죽는다는데, 그런데 어쩌지? 난 내 친구의 애기가 하나도 이쁘지 않다. 애는 내 친구와 나를 갈라 놓는 방해물이며 내 친구와의 만남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드는 지우개였다.
솔.직.히! 친구 아들이 입에 문 과자를 침으로 으깨고 여기저기 뱉고 다닐때 구역질이 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구의 애가 밉다는 이야길 했다.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다. 졸지에 정이 없고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조금 당황한 나는 그래도 친구의 애니까 조금은 이뻤다고 덧붙여본다. 그렇게 없는 모성을 억지로 덧입혀본다.

자괴감이 든다. 나는 모성이 결핍되어 있는 인간인가? 모성은 갖추어야만 하는 필수 덕목일까? 모성이 원초적인 본능일 수는 있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다 똑같은 양의 모성이 있는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게 왜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건데?
나에게도 어린시절이 있었으니까? 에이, 아니다. 모두들 전제하에서 말하고 있는거다. 나는 여자고, 언젠가 '엄마'가 될 사람이란 전제 하에서 자꾸만 모든걸 말한다.
잠깐, 그럼 부성은? 부성은? 모성의 결핍은 크나큰 결함인데, 부성은 그렇지 않잖아. 남자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나처럼 귀찮게 여기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존재할 수 있는 현상이다. 모성은 필수, 부성은 선택. 모성 없는 여자는 비정상이고, 부성없는 남자는 정상일 가능성이 높고.

 "책에서 봤는데, 두 살부터 네 살 까지는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어가는 과정이래. 그래서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감정의 조절이 잘 안된대."

'아악'하고 지르는 괴성에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었다.
엄마가 된 내 친구는 왜 이리 초라하고 작아보이는지.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다는데 그건 그 아기한테나 해당되는 얘기다. 나도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지만 어머니가 된 친구는 한 없이 작고 초라하다.
특히나 이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지. 친구 아들 잘못도 아닌데, 역시나 나는 내 친구의 작은 어깨에 덧대 퍼져 자는 그 아이가 한참이나 밉다. 자기 자식도 아닌데 모성을 십분발휘해야만 하는 강요에 사로잡힌 이 사회가 참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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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친다 2008/09/19 14:10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위기사태는 미국경제의 침체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경기가 안좋아서 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가 안좋다라고 본다는 것은 너무 간편한 판단이다.

게다가 2MB식 뉴딜정책이 우리의 목전에 다다른 요즘 아래 글들은 진짜 읽어볼만하다.

원본 : http://blog.hani.co.kr/j1chju69/17407
제목 : 미국의 금융위기 - 공급주의 경제학의 종언을 보면서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수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재정 적자에 허덕이던 정부를 구원해준 '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존 로(John Law)는 1671년 스코틀랜드에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큰 부자로 태어났지만, 방탕한 생활로 젊은 시절에 재산을 모두 날렸지요. 더군다나 그는 결투에서 상대방을 살해한 혐의로 영국에서 수배되는 바람에 유럽을 전전하며 도박을 하여 먹고살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방탕한 기질과는 달리 선견지명이라고 할만한 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의 유럽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경제규모에 비해서 화폐를 만들 수 있는 귀금속이 턱없이 부족해지던 참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조국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정도가 퍽이나 심해서, 주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지경이었지요. 주화가 없으니 아무런 상품도 살 수 없고, 생산의 동기도 없고, 따라서 일자리도 없고, 경제도 침체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만은 다른 유럽 각국들과는 달리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답니다. 그것은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에서 금으로 태환(兌換)을 보증하는 증서인 지폐(紙幣)를 최초로 발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지폐로 말미암아 네덜란드에서만큼은 통화량(通貨量)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존 로는 이 점에 착안하여서 파리에서 당시만 하여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미시시피의 서쪽 루이지애나 지방의 땅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으 로 바꾸어줄 수 있는 (태환가능(兌換可能)할 수도 있는?) 증서를 발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럽세계에서 최초로 발행된 ‘불환지폐(不換紙幣)’입니다. 물론 유럽세계 밖에서야 몽고지배하의 중국인 원(元)나라에서 이미 소금으로 태환되는 교초(交鈔)라 는 지폐를 발행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이는 엄연히 소금과의 교환을 전제로 한 지폐였기 결코 불환(不換)의 화폐는 아니었답니다. 좌우지간 존 로의 이 참신하고 멋진 사기에 가까운 아이디어 덕분에 프랑스도 큰 호경기를 구가할 수 있었고, 당시 루이 14세 정부의 엄청난 재정적자도 간신히 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이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었으니 존 로는 착한 사깃군(?)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의 욕심이 좀 과하였던 모양입니다. 지폐의 발행고가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었고, 사람들은 루이지애나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으로 지폐를 바꾸어달라고 쇄도하게 되었지요. 당연히 존 로(John Law)는 외국으로 달아나버렸고, 그의 지폐를 받아서 백만장자가 되었던 이들도 쪽박을 차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최초의 불환지폐발행은 그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은행(bank)'에 대한 쓰디쓴 기억을 남긴 한 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어에는 '은행'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없답니다.

1929년의 뉴욕 주식시장 붕괴로 촉발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의 대통령 프랭글린 데오도어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추진한 이래, 꽤 오랜 시간동안 서구 경제학의 주된 흐름은 ‘케인즈 경제학 (Keynesian Economics)'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고 꾸준한 호황을 구가하도록 뒷받침하여준 이 이론은, 경제적 과정을 잠재 생산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보는 18세기 후반 이후의 고전 경제학과는 달리, 상품에 대한 총수요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민간부문 못지 않게 공공부문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여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한 개입을 정당화 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1차 오일쇼크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시대를 거치면서 이에 대한 비판도 대두하게 됩니다. 즉,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이 주장한 통화주의(monetarism), 루카스 학파 (Lucas critique)의 합리적 기대이론 (rational expectations), 신고전주의 경제학 (New classical economics) 등 수요측면과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였던 케인즈 경제학에 대비되는 공급측면과 민간부문의 자율을 강조하 는 이론들이 출현한 것이지요. 이런 공급주의 경제학 이론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2008년 현재까지 특히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대표되는 미국 공화당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어 왔습니다. 이 이론들은 공통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부문에 많은 자율을 주어서 공급자들과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공급주의 경제학 (Supply Sided Economics)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실제로 지미 카터가 통화주의자인 폴 볼커(Paul Volcker)를 FRB 의장으로 선임한 이래, 알랜 그린스펀(Alan Greenspan), 현재의 벤 버냉키(Ben Bernanke)까 지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미국 금융계를 주도하는 있는 이들의 면면이 모두 공급주의 경제학에 경도된 이들인 것을 보아도, 이들이 현재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급주의 경제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미국 경제를 주름잡고 있던 동안에, 미국 정부는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해서 결국에는 세입도 증가할 거라는 이른바 래퍼효과(Laffer Effect)라 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감세를 감행하게 됩니다. 그런 조치들이 당시 정체상태에 있던 경제에 약간의 활력을 불어넣었을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에 엄청난 재정적자와 20세기 초반수준으로 벌어진 미국사회의 심한 빈부차를 남기게 된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순이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 2007년 상순에 표면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문제(subprime mortgage crisis)라 하 겠습니다. 최근의 미국 금융시장을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든 이 문제는, 약 30년간 정계와 학계를 지배해왔던 공급주의 경제학과 이에 바탕을 두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영미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애시당초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여 균형을 이루는 시장’이라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어느 쪽이 되었건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을 할 때에만 사회적인 낭비를 줄이는 균형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첨단금융기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험을 분산하였다’고 주장하였던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부채담보부채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신용 디폴트 스와프(CDS, Credit Default Swap) 등 파생금융상품들은 단지 위험을 전가하고 자산가치의 하락을 감추기 위해서 복잡한 수식과 도표로 포장한 ‘사기’일 뿐이었습니다. 마치 18세기 초반 존 로가 루이지애나의 묻혀 있을지 모르는 금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였듯이, 갚을 능력도 없는 이들에게 함부로 돈을 빌려준 다음, 그 빚을 잘게 나누어서 여러 사람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 마치 안전한 자산인 양 태연히 수수료를 챙기면서 판매를 한 것입니다. 이런 파생금융상품들의 문제점은, 만약 돈을 떼인다 하더라도 자신이 손해날 것이 없으니, 당연히 돈을 빌려줄 때에도 엄격하게 심사를 하지 않을 것이고, 채권의 회수를 위해서도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부실화하기 쉽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감추면서 열심히 돈장사를 하여서 제3세계의 투자자들을 등친 투자은행들의 도덕적인 해이(moral hazard)가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사태를 가져오고, 종국에 가서는 월가 자체의 붕괴를 불러일으킨 것이지요. 원래 돈이란 빌려준 사람이 가장 열심히 되찾으려고 노력을 하여야 하고, 빌려줄 때에도 신중하게 빌려주어야 하는 법인데, 그게 되지 않았으니 이 꼴이 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이 그렇게도 외쳤던 '규제의 철폐'가 시장 참가자들의 도덕적인 해이를 불러왔고 종국에는 그 시장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 것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공단이나 각종 금융기관들도 그런 말도 안되는 ‘사기 종이쪽지’를 안전하다고 믿고 수백억원씩 국민이 맡긴 돈을 들여서 사들여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점입니다. 그 책임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들이 루이지애나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을 믿고 존 로가 남발한 지폐를 받아 모았다가 알거지가 된 프랑스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사기를 친 존 로와 자신들은 전혀 노동을 하지 않고, 따라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재화나 용역을 전혀 생산해내지 않으면서 순진한 제3세계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는 미국 금융자본가들도 또한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는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1997년 IMF 외환위기때 우리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였는지 벌써들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작 수백억 달러를 빌려주면서,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망하는 것을 전혀 정부가 나서서 구제하지 못하게 강제하였습니다. 공적자금의 투입도 성업공사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만 가능하였지, 정부가 직접 기업의 주식을 인수하거나 하는 것은 ‘시장의 질서에 어긋난다’고 하여서 엄격하게 제한하였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가정이 붕괴되고, 재산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려야만 하였습니까? 그러던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망하게 된 데 대해서는 정부에게 태연히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서 구제해달라고 요구하 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당당하게 하는데도 세계 어떤 나라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왜 ‘너희가 하면 로맨스고 우리가 하면 불륜이냐?’고 외치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특히 미국 금융자본에게 뼈아픈 굴욕을 당하였던 우리 정부라면 당연히 한 마디라도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좌우지간 이제 사람들이 이른바 네오케인지언이라고 부르는 콜롬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프린스톤 대학의 폴 그루그만(Paul Krugman) 같은 이들은 이번 미국 월가의 공황상태를 가리켜서 ‘공급주의 경제학의 종언’ 이라고 부르고들 있습니다. 시장에서의 실패가 드러났으니, 더 이상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식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시장이 건전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에 공적인 정부의 개입과 적당한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기능으로 적절히 공급을 할 수 없거나 독과점의 위험이 큰 이른바 공공재인 ‘철도, 교통, 항만, 전력, 우편, 수돗물’ 등 이른바 ‘시장의 실패’ 대상들은 과감히 국유화 혹은 공적 생산을 통해서 적절한 통제하에 생산해야만 합니다. 세금도 적절한 정도까지는 올려야하고, 부의 적절한 재분배와 세습의 차단을 위해서 정부가 과감하게 개입해야만 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서 옳은 일입니다.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지난 30년간의 공급주의 경제학 시대는 이제 자본주의의 총본산이라는 미국에서부터 막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의 공급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우리나라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는 자칭타칭 ‘전문가’라는 분들은 아직 이런 세계적인 변화의 조류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돈 버는데 혈안이 된 ‘금융기술자’들이야 많습니다만, 경제의 흐름에 대해 깊은 식견과 혜안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중매체에 나와서 떠드는 이들도 모두 미시적인 변화를 이야기하지,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계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그 조류에서 뒤떨어지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더 이상 없는데도, 아무도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당분간 긴 침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생각이 있는 이들이 있으니 언젠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줄여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얼빠진 소리들을 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위정자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고 느끼는 것은 결코 저 혼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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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친다 2008/09/06 15:43

안녕프란체스카 2시즌 심혜진의 닭집으로도 유명한 닭날다!
(물론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 2’에서는 비둘기 요리집으로 등장했지만.... 이곳은 엄연한 ‘닭’요리 집입니다)

본인은 대학교 새내기 시절 홍대를 다니던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맛집으로, 이곳 닭 철판볶음과 함께 이십대를 보낸 기분입니다. ^0^

위치는 홍익대학교 정문 근처에 위치한 삼거리 포차 골목으로 빠지면 (꽃파는 술집 안동찜닭 등등을 거쳐) 이제는 거대해진 <닭날다>의 건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닭이 날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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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다면 2001년 이후 3-4번의 이사를 거쳐, (그래도 위치는 언제나 홍익대학교에서 극동방송국 사이를 벗어나지는 않았었군요.) 이제는 홍대 내에서 분점까지 낸 유명한 맛집입니다.

주 메뉴는 "닭철판 볶음"입니다.

  • 오리지날 철판 : 13000원, 한 마리 반은 19500원
  • 뉴철판 (철판볶음에 치즈를 얹은 것) : 16000원 한 마리 반은 24000원
  • 똥집은 10000원
  • 프리미엄 똥집은 16000원
  • 알밥은 1500원입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알밥은 명태알밥으로 생각하는데, 이곳은 닭날다입니다. 알밥 에는 닭의 알이 들어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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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려주신 보배로운 음식 ‘치킨’과 함께 하는데 주(酒)류가 빠질수 없겠지요. 600cc 의 보온물병통에 나오는 맥주는 철판볶음의 매콤함을 덜어주는 데 아주 그냥 와따입니다!

2명이서 닭철판 볶음 하나면 배가 불러 찢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너무 무리해서 많은 양을 시키지 않기 바랍니다.(맥주의 양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후시간을 더부룩하게 보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 측정 수치로, 가장 좋은 인원수는 3명!입니다. 철판볶음 시키고 알밥 한두개 시켜서 철판에 부셔 먹을때의 그 행복함과 배부름이란..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데이트 갑니다’라고 써 붙인 주인아저씨의 휴업 문패가 곧잘 붙어 있기도 했구요. 사람은 하루는 쉬어야 한다며, 일요일에는 과감하게 문을 닫기도 했었죠. 세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던 스무살 초반의 닭날다가 가끔씩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맛난 닭철판볶음과 건빵이 있기에!

홍대에서 다른 닭 철판 볶음집을 가긴 힘들 것 같군요!


Posted by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