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들리는 민중가요중 하나가 아닐까 했는데, 그 제목이 몬가 했다. 지금 시기에 잘 어울리는 노래다. 같이 나눴으면 해서 올려본다.
언론의 사유화, MB악법 꼭 막아내야 한다.
길 그 끝에 서서 (글 박현욱 , 곡 지민주 , 편곡 마구리밴드)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온거야 언제나 길의 끝에 섰던 사람들이 우리가 온 길을 만들어 온것처럼 눈 앞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먼저 간 사람들의 빛을 따라 온 것처럼 이제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될 차례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 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 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대게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열두살. 만화 대여점에서 300원에 책 한 권을 빌려 하루 종일 읽고 또 읽던 무렵이었다. 어른이라 부르기엔 미숙하지만, 어른의 모습을 하고. 풋사랑이라 부를지언정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 이 만화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런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그 나이'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겨울. 나는 교회 겨울 수련회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두 뼘 내지 세 뼘 키가 큰 ‘오빠들’. 신발에 질질 끌리는 청바지. NIX와 GET USED, Calvinklein 따위의 메이커들. 문화적 충격과 세대간 격차를 몸으로 새기던 시절 나는 이 만화를 떠올렸다. 무언가 비슷해. 묘하게 닮았어. 두 손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나는 나에게도 ‘그 시절’이 왔음을 상기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유혜진’은 빨리 발돋움해서 오빠 같이 자라고 싶다. 자신의 오빠가 회장으로 있었던 고교 동아리 <JUMP TREE A+> 가입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오빠와 비슷한 승주 오빠를 만난다. 당연히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는 단짝친구가 등장하고 한 살 차이일지언정 그 나이만큼 어른의 역할에 다가간 선배들이 등장하고. 그리고 첫 사랑도 나타난다.
만화는 순정만화답게, 보잘 것 없고 울보인 유혜진에게 4명의 남자가 쏠리는 러브라인을 구축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의 선택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남자인 승주보다는 이미 동아리 내에 오랜 연인 이 존재하는 있는 태준이를 향한다.
만화의 마지막, 혜진이는 자신의 친오빠보다는 조금 작은 키로 자신의 열일곱을 함께해준 사람들과 사람들과 함께 웃는다.
아주 가끔 생각을 해본다. 당연히 그 나이가 되면 ‘꼭 만날 수 있을거라’ ‘당연히 존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 나는 한번도 ‘어른스러운 미성년’의 존재를 부정해본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비록 그러한 고교시절을 보내지 못했지만, 내가 겪지 못했다고 해서 그 존재가 없는 거라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난 십년이나 더 어린 그 애들보다 더 어린 스물 일곱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88만원 세대로 세상을 마주쳤을 승주오빠와 태준이 오빠는 무얼 할까? 꿈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꿈을 선택한 터프한 민휘경은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었을까? 나보다 ‘선배’로써 ‘첫사랑’을 앓았던 만화 속 주인공들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참 많다.
여하튼 이 만화를 읽고 나면 그렇다.
백뮤직으로 등장하는 이오공감이나 푸른 하늘의 노래, 90년대초 이승환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듣고 싶어지고. 그 시절, 그 거리, 명확하게 지칭되지 않았던 그 때가 떠오르고. 누구라 허공에 발차기 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울 지언정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오공감이라니, 누구에게는 개유치할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첫사랑을 해본 나에게는 아직 세상 최고의 낭만이고 순수고 열정이고 그렇다.
*다른 이에겐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오공감’만큼 낭만적인 노래가 아직 없다. 10점 만점의 10점을 부르는 세대 속에서. 관리 소홀로 늘어나 버릴지도 모르는 가냘픈 테잎에 녹음된 ‘한사람을 위한 마음’ 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 모든 순정만화가 그러하듯이 만화는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설정이 전개 된다. 사랑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주위에 등장하는 수 많은 남자들의 애정과 헌신... 그리고 그녀에게 마냥 관대한 주변 인물들... 잊지 말자.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자 상기시키자. 이 만화는 여자들의 판타지와 희망을 그린 ‘순정 만화’다.
* 역시 모든 순정만화가 그러하듯, 남자 등장인물 중 장발이 등장하지 않으면 순정만화가 아니다. 남자 고교생의 머리가 어떻게 허리까지 오는지 헤비메탈 그룹과 비슷한 퍼머까지 가능한지 스타일인지는 묻지 말자. 이 만화는 90년대 ‘순정만화’라는 면죄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캠프파이어 시간에 나오는 BGM 가사를 읽어보라. 어쩌면 당신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의 노래가사를 그냥 지나쳤을지도 (아예 모를지도) 모른다. 94년 당시에 고교생이었던 그들의 현재나이를 곰곰이 계산해보길 바란다.
*당시 순정만화지 <댕기>에 연재되었던 이 만화는 한국 순정만화 최고의 르네상스시기를 구축하며,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었다. 90년대 인기가 많았던 만화가 재판 삼판 수어번의 재탕 출판되는 것에 반해 이 만화는 단 한 번의 재판 외에 새로 판을 찍지 않았다. 특별한 근황이 전해지지 않는 작가인데 책이나 더 찍어주지 두문불출 뭘 하고 지내는지(아울러 그녀의 수입원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책을 구하고 싶은 팬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그것도 대여점을 한번 거친 상태인 나쁜 상태의) 옥션 책의 가격을 보면 바짝바짝 애가 탄다. 헌책방을 지나다가 이 만화책을 본다면 주저말고 구입하라! 팬이라면 만화를 소장했단 기쁨에 몸부림을 칠 것이고, 팬이 아니라면 옥션에 올려 짭잘한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만화를 보면서 드는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이 대사를 고등학생이 읊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다. 어릴 때야 아 고등학생이 되면 저런 말을 할 정도로 ‘진지해’지나보다 싶었지만, 나는 서른이 돼서도, 마흔이 되서도 저런 대사를 읊을 일이 없을것 같다....(일단은...)
예시가 될 만한 몇 개의 컷을 붙여 보겠다.
스물 일곱의 나도 한번 읊어 본적 없는 이 대사. 집착은 커녕 소유조차 해보지 못한 내 인생이 아련하다;;;
이런 대사를 후배 앞에서 읊을 수 있는 용기. 열 아홉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객기이리. (비록 십년후 손발이 오그라들지라도)
병아리라니 누가 병아리란 말인가. 열아홉살의 입장에서 보자면 열일곱도 병아리로 보일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 치밀어 오르는 씁쓸함은 무엇일까?
아흔 여덟이 되더라도 평생을 걸쳐 읊어보지 못할 듯한 대사다.
하지만 이 수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이 만화를 꺼내볼 때마다 설레이는 서정적인 <녀성>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이 만화를 읽을 때는 ‘90년대 감성’을 잊지 않은 채 만나야 맛이다.
나에겐 윤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윤영이네와 우리집. 두 집은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윤영이네도 딸 딸 아들 셋이었고, 우리집도 딸 딸 아들 셋이고. 윤영이와 나는 동갑이고 윤영이네 막내와 우리 승용이가 동갑이고 그랬다. 두 집안은 모두 연희 교회를 다녔고, 초등학교 입학 전 같은 피아노 학원에서 얼굴을 트고, 초등학교 중학교 같은 교회 같은 성가대를 하면서 친구로 지냈었다.(현재는 특별한 교류가 없는 사이이므로, 과거형이 어울리겠다.) 그리고 승용이는 윤혁이와 베스트를 먹기까지 한 사이였다. 그런 윤영이네와 우리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할머니였다.
맞벌이하는 가정이었던 윤영이네와 엄마가 아빠랑 같이 남대문에서 장사하던 우리집. 우리집에도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고, 어릴적 놀러갔던 윤영이네도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승용이와 윤혁이 중, 먼저 입대한 건 윤혁이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윤영이네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군에 보낸 손주에게 편지가 너무 쓰고 싶어서, 한글을 배우셨다고.
편지에는 단 일곱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삐뚤빼뚤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글씨로 딱 일곱자.
'윤혁아 보고싶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우리 할머니만큼 나에게 무한한 축복과 애정을 쏟아줄 사람은 다시 없을 거라는 거. 부모와 자식은 애정과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면 할머니와 손주 관계는 조금 더 선택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선택엔 내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할아버지 옆에 묻어드리고 돌아온 날, 가장 먼저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상실감이었다. 세상 속에서 이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겠구나. 이제 다시 찾을 수 없을 애정에 대한 박탈감에 책상앞에서 질질 울었다.
나 하나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을 애정일지라도, 크고 크게 쏟아 부으며 사랑해 줄. 우리 할머니는 이젠 없다는 거. 그게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그 불쌍한 사람이 우리 할머니어서 울었다. 혼자 남은 내가 너무 안쓰러워 울었다.
학교 다녀오겠다 밖에 나갔다 오겠다 인사 같지도 않은 인사 건네면 할머니 방문을 나서면 항상 한결 같았던 우리 할머니.
'조심히 댕겨와'
그게 얼마나 큰 애정이고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인지.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을 외롭고 섧은 사랑인지 몰랐던 건 아니지만.
전할 수만 있다면, 윤혁이네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편지를 쓴 것처럼, 꼭 그 크기만큼을 바쳐서. 나도 우리 할머니한테 편지를 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