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장관이 나서 100만 해고설, 70만 해고설 등 오락가락하며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예고했던 6월 30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KBS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이 일하던 본관의 계단에서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서 해고 방침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며칠 전 열린 KBS 이사회에서 비정규직 420명 중 331명은 자회사 소속으로 바꾸고, 89명은 계약을 해지하고, 6월 말에 18명은 즉시 계약 해지할 계획을 정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임금차별은 지속되지만 당장 고용안정은 기대할 수 있는 무기계약으로 전환 가능한 3000명 가량을 대량 해고할 계획을 갖고 있다. 국토해양부 산하 도로공사, 토지공사 등 28개 공기업에서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1,361명의 해고가 예정되어있다. 보훈병원, 인천공항, 산재의료원 등 공공부문 곳곳에서 비정규직 해고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살풍경은 과연 노동부가 기간제한 2년을 4년으로 연장하자고 강변하던 근거로 주장했던 현행 비정규법으로 인한 비정규직 대량해고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공공부문에서 정부가 앞장서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촉발하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선진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10% 획일적 정원감축 방침이 비정규직과 하위 기능직의 해고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또 기간연장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오히려 비정규직 계약해지를 악용하고 있다는 혐의도 짙다. ‘그것 봐라! 기간 연장으로 비정규직일지라도 좀 더 고용을 유지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무력시위를 벌이는 느낌이다.
정부여당 말대로 기간연장을 한들 이 모든 계약 해지 대상자들이 고용연장의 혜택을 받지도 못한다. 4년은 최대 사용기간일뿐, 모두에게 4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게 아닌 탓이다. 2009년 3월 기준 기간제 노동자 230만 명 중에서 2년 이상 근속자는 50만 가량인데, 그 중 계약연장의 혜택을 받을 노동자는 1/10 수준인 5만 명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마저 정규직으로 전환될 사람을 대체하는 부정적 고용유지의 경우도 포함된다. 7월 2일 한나라당이 추진해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과 합의를 이룬 ‘현행 2년 기간제한+1년6개월 유예’라는 안은 정부안과 6개월의 격차는 있을지라도 당장 미치는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할수록 기업들은 정규직을 줄이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한다. 전체 노동자 평균 근속기간이 4.3년인데, 정규직을 뽑는 기업이 예외처럼 여겨질 판이다. 이런 기간연장(또는 적용 유예)의 부정적 결과는 노동시장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 이미 포화상태라고 여겼던 비정규직 규모를 또 한 번 급팽창시킬 것이다. 정말 비정규직 처지를 생각한다면 긍정적 고용유지의 효과는 극히 제한되고 부정적 결과는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발생할 기간연장이나 유예를 선택할 게 아니라, 당장 해고를 중단하라는 긴급 처방을 발표하는 것이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자세이다.
그렇다고 비정규법 제정을 주도했던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민주당의 주장처럼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현행 비정규법의 기간제한은 2년 이내에는 자유롭게 계약기간을 정하고 2년 이상 계속 고용하면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끔 하는 제도이다. 물론 2년까지 고용이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라서 3개월, 6개월, 1년 등 2년 이내 단기계약직이 80% 정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는 변화가 없다. 2년 넘게 3년, 5년, 심지어 십여 년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고 해서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는 좋은 제도임을 입증하기 위해 펼쳤던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으로 2006년 이후 8만3천 명 가량, 또 은행, 증권, 보험, 유통 분야에서 그보다 적은 숫자가 반쯤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전체 노동자의 1%도 안 되는 숫자가 온전한 정규직이 아니라, 주기적 해고에 직면하는 비정규직 신세를 간신히 면했을 뿐이다.
단지 정규직 전환의 성과가 미미한 정도라면 이 법 시행을 ‘좀 더 지켜보자’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을 법하다. 비정규직의 대다수인 2년 이내 단기계약직 노동자가 실업과 재취업을 오가며 주기적 실업을 겪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대기업이 고용 책임을 중소기업이나 자회사로 떠넘겨 더 열악한 처지의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파견, 용역, 하청, 도급 노동자 등 간접고용이 증가했다. 비정규직 활용의 기준이 될 앞문(기간제한 방식의 선택)을 허술하게 세우며, 파견법 개정으로 뒷문을 더 크게 열어젖힌 꼴이다. 또 얼마 전 문자메세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사례와 화물연대 박종태 광주지부장의 자살로 다시 한 번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는 비정규법의 틀 안에 담지도 않았다. 차별시정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지가 불안한 비정규직 개인이 목숨 같은 고용을 담보로 어렵게 제기해야 한다. 그래봐야 차별로 인정받을 확률은 10%가 안 되며, 그나마 고용계약은 이미 종료된 뒤의 일이다.
현행대로 2년 기간제한을 유지하든, 4년 연장하든, 1년 반 유예하는 조처를 취하든 기간제한의 틀 안에서 100만 명이 아니라 840만 명 비정규직 대다수가 수시로 해고를 경험하게 된다. 5만 명이 아니라 한 해 2-300만 명씩 고용불안정에 직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극히 일부의 고용연장을 빌미로 비정규직 확대를 가져올 기간 연장을 꾀하는 정부여당과 보호하는 시늉만 내며 비정규직의 마구잡이 활용에 면죄부만 부여해 준 원형을 만든 민주당이 맞서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2년, 4년 숫자놀음만 하고 있는 사이 정작 근본적 해법 논의는 실종되고 말았다.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집약되는 비정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정말 있다면, 현행 비정규법의 골자인 ‘기간제한의 한계’를 직시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년 안에 계약해지 하고 사람만 바꾸든, 아예 아웃소싱으로 고용책임에서 벗어나든, 아님 일부만 비정규직으로 계약 연장을 하든, 또 일부만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든 선택권은 모두 사용자에게 있다. 부정적 결과가 긍정적 효과를 압도했음도 입증됐다. 5년, 7년 이상 상시적으로 활용했던 비정규직은 명실상부한 비정규보호법 아래서는 바로 정규직이 되는 게 맞다. 이런 상식을 뒷받침하려면 ‘상시적인 일은 정규직으로,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고용기준을 세우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기간제한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던 당시 열린우리당 모 의원의 말처럼 사유제한은 ‘혁명적 발상’이 아니라, ‘상식을 실천하는 대안’이다.
아울러 정부는 당장 벌어지는 해고 사태의 중지를 선언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제대로 된 판단 기준과 절차를 갖춘 차별시정제도, 불법파견을 엄단하고 간접고용으로 우회하는 길을 차단하는 간접고용 제한조처, 비정규직을 많이 활용한 기업을 제재하고 정규직 활용에 주력한 기업에 지원을 하는 제대로 된 정규직전환지원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
7월2일 이명박 대통령은 기간연장을 하면서 근본적 대책을 만들어가자면서 고용 유연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고용유연화는 비정규직의 확대, 전 노동자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뿐이다. 이미 세계 1위의 비정규직 규모와 전 세계 최악의 차별구조인데, 근본적 대책이 고용 유연화인가? 공공부문 정원 10% 감축 방침으로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몰면서, 그 자리를 더 열악한 청년인턴으로 채우는 고용 대책과 똑같은 발상일 뿐이다. 이런 정부를 향해 근본적 대안을 얘기해봐야 비정규직 보호를 핑계로 비정규직을 더 사지로 내몰고 말 듯하다. 대안은 분명 있는데, 엉뚱한 얘기만 난무한다. 비정규직을 활용해서 기업이 비용 경쟁력을 높인다고 하지만 그 대가로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고용불안정과 생활불안정의 늪에 빠지며, 결국 우리 사회는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양극 분해된 사회로 치닫게 된다.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 유연화라는 신화의 끄트머리를 우리만 시대착오적으로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
_김성희(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