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이야기 2010/01/24 14:33
벌써 2010년 1월은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새해는 왠지 음력 1월 1일부터라는 생각이 드는건 게을러서 일까요?

그래도 새해 인사는 새해 인사 답게!
청년회 식구 모두 한 해 시작, 뜻있게 하셨는지.

새해 첫날 몇 몇 회원들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망월동에 이런 글귀가 있더라고요.
"얼음장을 깨고 물을 길어 2010년을 짓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청년회도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작년을 평가하고 한 해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 세우는 일이 쉽지 않지만,
2010년을 짓는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한 해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을지, 기대해주세요.
또 그 간 깊은 사색을 해온 것들이 모여 2010년 청년회를 만들어가리라 믿어주실거죠? (하하 이건  뭐...협박은 아니고~^^)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성큼성큼. 그리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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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얘기해요 2009/08/02 14:42

우리의 상상력에 엔진을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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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그늘과 아이스커피를 찾게되는 계절이 다가 왔습니다. 인사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다들 평안하시죠? 청년회도 복작복작 시끌시끌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청년회가 원래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지라 올해 총회를 거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벌여놓았습니다.
최초 시작은 아주 작은 일이었습니다. '청년회도 이제 6년 째가 되어가니 중간 점검이나 해볼까?' 그러던 것이, 지금의 청년회 상황을 진단하고 평가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6개월 간의 토론으로 번졌습니다.


이름하여

'마포청년회 Change-Up Project 상상더하기'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청년회가 청년들에게 영향력있는 조직이 되면 좋겠다는 회원들의 바람을 담아 이것저것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조직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변화와 혁신을 밥먹듯이 하는 마포청년회의 변화 모습을 애정을 담뿍 담아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상상더하기 하나. 나도 좀 놀자!

 
'내가 즐거워야 다른 사람도 즐겁다.'
청년회는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곳일까? 어느 새 청년회는 사업을 해야하는 곳이 되어있더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 싶으면 나부터 즐거워야 같이 하자고 꼬시기라도 하지~
 
작년까지 3년간 청년회는 대중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분과체계였습니다. 그래서 각 분과마다 하나씩 대중사업을 해야하는 부담이 있었어요. 까칠한 회장덕에 사업을 두개씩은 해야하는 마음의 짐까지 안아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원들이 사업고민만 하게 되어 이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하고 싶은 것을 최우선 고려해서 청년회에 맞는 모임을 하되, '오픈'해서 사람들이 와서 같이 하게 하도록 변화했습니다.
서울 여기저기를 찾아 걸어다니는 '느리게 걷기', 책 읽는 'BOOK+ing', 영화, 연극, 사진, 미술로 세상을 보는 '별일없이' 가 청년회의 세 개 오픈모임들입니다.
각 모임이 오픈하는 날, 여러분도 놀러 오세요.

 

상상더하기 둘. 청년회 손내밀기

 
'우리 사무실은 회의하기 좋아. 근데  우리가 회의주의자니?'
청년회 재정은 순수하게 회원과 후원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그 재정의 거의 대부분이 사무실 운영비로 쓰입니다. 그런데 그 사무실을 왜 혼자놀기 대마왕 회장 혼자서 쓰는걸까? 나도 사무실에 가고 싶어봤으면 좋겠다. 친구들하고 놀러가서 수다도 떨고, 조용히 책도 보고, 음악을 듣거나 대개는 편히 술도 먹었으면 좋겠어.
 
동교동 삼거리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장마철이면 비가 줄줄 새던 사무실에서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다 옮겨온 곳은 좋았습니다. 넓거든요.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강좌할 때도 좋았고요. 그런데 정작 회원들은 사무실을 쓰지 않더라는거죠. 공간을 낮동안에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회원들의 상상력을 모아 사무실 변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까페를 해보자는 의견도 있고 모임공간을 제공하는 곳으로 써보자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7월 전체모임 자리에서는 사무실을 어떻게 바꿀지 대략 큰 방향을 정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찾아오고 싶은 공간을 만들거예요.

친구들과 놀러오세요. 차를 마시러, 책을 읽으러, 음악을 들으러, 술을 마시러.


마포청년회 회장 정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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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친다 2009/07/24 10:47

노동부장관이 나서 100만 해고설, 70만 해고설 등 오락가락하며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예고했던 6월 30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KBS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이 일하던 본관의 계단에서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서 해고 방침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며칠 전 열린 KBS 이사회에서 비정규직 420명 중 331명은 자회사 소속으로 바꾸고, 89명은 계약을 해지하고, 6월 말에 18명은 즉시 계약 해지할 계획을 정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임금차별은 지속되지만 당장 고용안정은 기대할 수 있는 무기계약으로 전환 가능한 3000명 가량을 대량 해고할 계획을 갖고 있다. 국토해양부 산하 도로공사, 토지공사 등 28개 공기업에서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1,361명의 해고가 예정되어있다. 보훈병원, 인천공항, 산재의료원 등 공공부문 곳곳에서 비정규직 해고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살풍경은 과연 노동부가 기간제한 2년을 4년으로 연장하자고 강변하던 근거로 주장했던 현행 비정규법으로 인한 비정규직 대량해고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공공부문에서 정부가 앞장서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촉발하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선진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10% 획일적 정원감축 방침이 비정규직과 하위 기능직의 해고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또 기간연장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오히려 비정규직 계약해지를 악용하고 있다는 혐의도 짙다. ‘그것 봐라! 기간 연장으로 비정규직일지라도 좀 더 고용을 유지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무력시위를 벌이는 느낌이다.


정부여당 말대로 기간연장을 한들 이 모든 계약 해지 대상자들이 고용연장의 혜택을 받지도 못한다. 4년은 최대 사용기간일뿐, 모두에게 4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게 아닌 탓이다. 2009년 3월 기준 기간제 노동자 230만 명 중에서 2년 이상 근속자는 50만 가량인데, 그 중 계약연장의 혜택을 받을 노동자는 1/10 수준인 5만 명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마저 정규직으로 전환될 사람을 대체하는 부정적 고용유지의 경우도 포함된다. 7월 2일 한나라당이 추진해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과 합의를 이룬 ‘현행 2년 기간제한+1년6개월 유예’라는 안은 정부안과 6개월의 격차는 있을지라도 당장 미치는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할수록 기업들은 정규직을 줄이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한다. 전체 노동자 평균 근속기간이 4.3년인데, 정규직을 뽑는 기업이 예외처럼 여겨질 판이다. 이런 기간연장(또는 적용 유예)의 부정적 결과는 노동시장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 이미 포화상태라고 여겼던 비정규직 규모를 또 한 번 급팽창시킬 것이다. 정말 비정규직 처지를 생각한다면 긍정적 고용유지의 효과는 극히 제한되고 부정적 결과는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발생할 기간연장이나 유예를 선택할 게 아니라, 당장 해고를 중단하라는 긴급 처방을 발표하는 것이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자세이다.


그렇다고 비정규법 제정을 주도했던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민주당의 주장처럼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현행 비정규법의 기간제한은 2년 이내에는 자유롭게 계약기간을 정하고 2년 이상 계속 고용하면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끔 하는 제도이다. 물론 2년까지 고용이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라서 3개월, 6개월, 1년 등 2년 이내 단기계약직이 80% 정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는 변화가 없다. 2년 넘게 3년, 5년, 심지어 십여 년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고 해서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는 좋은 제도임을 입증하기 위해 펼쳤던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으로 2006년 이후 8만3천 명 가량, 또 은행, 증권, 보험, 유통 분야에서 그보다 적은 숫자가 반쯤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전체 노동자의 1%도 안 되는 숫자가 온전한 정규직이 아니라, 주기적 해고에 직면하는 비정규직 신세를 간신히 면했을 뿐이다.


단지 정규직 전환의 성과가 미미한 정도라면 이 법 시행을 ‘좀 더 지켜보자’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을 법하다. 비정규직의 대다수인 2년 이내 단기계약직 노동자가 실업과 재취업을 오가며 주기적 실업을 겪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대기업이 고용 책임을 중소기업이나 자회사로 떠넘겨 더 열악한 처지의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파견, 용역, 하청, 도급 노동자 등 간접고용이 증가했다. 비정규직 활용의 기준이 될 앞문(기간제한 방식의 선택)을 허술하게 세우며, 파견법 개정으로 뒷문을 더 크게 열어젖힌 꼴이다. 또 얼마 전 문자메세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사례와 화물연대 박종태 광주지부장의 자살로 다시 한 번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는 비정규법의 틀 안에 담지도 않았다. 차별시정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지가 불안한 비정규직 개인이 목숨 같은 고용을 담보로 어렵게 제기해야 한다. 그래봐야 차별로 인정받을 확률은 10%가 안 되며, 그나마 고용계약은 이미 종료된 뒤의 일이다.


현행대로 2년 기간제한을 유지하든, 4년 연장하든, 1년 반 유예하는 조처를 취하든 기간제한의 틀 안에서 100만 명이 아니라 840만 명 비정규직 대다수가 수시로 해고를 경험하게 된다. 5만 명이 아니라 한 해 2-300만 명씩 고용불안정에 직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극히 일부의 고용연장을 빌미로 비정규직 확대를 가져올 기간 연장을 꾀하는 정부여당과 보호하는 시늉만 내며 비정규직의 마구잡이 활용에 면죄부만 부여해 준 원형을 만든 민주당이 맞서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2년, 4년 숫자놀음만 하고 있는 사이 정작 근본적 해법 논의는 실종되고 말았다.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집약되는 비정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정말 있다면, 현행 비정규법의 골자인 ‘기간제한의 한계’를 직시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년 안에 계약해지 하고 사람만 바꾸든, 아예 아웃소싱으로 고용책임에서 벗어나든, 아님 일부만 비정규직으로 계약 연장을 하든, 또 일부만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든 선택권은 모두 사용자에게 있다. 부정적 결과가 긍정적 효과를 압도했음도 입증됐다. 5년, 7년 이상 상시적으로 활용했던 비정규직은 명실상부한 비정규보호법 아래서는 바로 정규직이 되는 게 맞다. 이런 상식을 뒷받침하려면 ‘상시적인 일은 정규직으로,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고용기준을 세우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기간제한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던 당시 열린우리당 모 의원의 말처럼 사유제한은 ‘혁명적 발상’이 아니라, ‘상식을 실천하는 대안’이다.


아울러 정부는 당장 벌어지는 해고 사태의 중지를 선언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제대로 된 판단 기준과 절차를 갖춘 차별시정제도, 불법파견을 엄단하고 간접고용으로 우회하는 길을 차단하는 간접고용 제한조처, 비정규직을 많이 활용한 기업을 제재하고 정규직 활용에 주력한 기업에 지원을 하는 제대로 된 정규직전환지원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


7월2일 이명박 대통령은 기간연장을 하면서 근본적 대책을 만들어가자면서 고용 유연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고용유연화는 비정규직의 확대, 전 노동자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뿐이다. 이미 세계 1위의 비정규직 규모와 전 세계 최악의 차별구조인데, 근본적 대책이 고용 유연화인가? 공공부문 정원 10% 감축 방침으로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몰면서, 그 자리를 더 열악한 청년인턴으로 채우는 고용 대책과 똑같은 발상일 뿐이다. 이런 정부를 향해 근본적 대안을 얘기해봐야 비정규직 보호를 핑계로 비정규직을 더 사지로 내몰고 말 듯하다. 대안은 분명 있는데, 엉뚱한 얘기만 난무한다. 비정규직을 활용해서 기업이 비용 경쟁력을 높인다고 하지만 그 대가로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고용불안정과 생활불안정의 늪에 빠지며, 결국 우리 사회는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양극 분해된 사회로 치닫게 된다.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 유연화라는 신화의 끄트머리를 우리만 시대착오적으로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


_김성희(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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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이야기 2009/07/21 18:37
도심 속 자연, 오늘 속 어제 삼청동에서 함께 한 신간들은 바쁜 일상 속 쉼표 하나 찍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6우러 6일. 현충일 아침. 눈을 뜬 시각은 아뿔사 1시 20분 안국역 2시까지 도착인데 이를 어째, 전날 신군의 환영파티와 이후 또 다른 술자리.... 내가 미쳤지 미쳤어. 걷기 모임의 첫 걷기 날에 늦잠이라니... 에휴... 살짝 늦겠다는 연락은 모임짱님께 드리고 세수만 하고 안국역으로  GOGO씽~
 
'대낮에도 휴일 시내는 밀리는 구나..'
숨을 가다듬고 도착한 안국역 던킨 도너츠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등산가 차미의 최용오빠~ 그리고 커플티를 상큼하게 맞춰 입어주신 병혁이 부자. 처음에는 살짜쿵 낯을 가리던 병혁이는 조금 후 도착한 임양 언니와는 급속도로 친해지더군... 역시 이런게 연륜인건가?

2시 30분을 넘긴 시각. 영진, 뜸금, 재임 + 용, 임양, 병혁부자는 느리게 걷기의 첫 번째 OPEN 모임 삼청동 걷기를 마을버스 탑승으로 시작했어-앗 걷기 모임의 시작을 버스 탑승으로..ㅋㅋ

성균관대 후문에서 한방

성균관대 후문에서 한방


성균관대 후문에서 하차하여 북대문 성곽 너머 '산을^산을^산을' 타기 시작했다. 난 정말이지 산이 싫어싫어싫어싫어 싫단 말야~~ 산을 싫어하는 나, 구두를 신은 임양언니, 병혁이를 들쳐안은 병혁 아버지.. 우린 정말 고생이 많았죠? 불효자 병혁이는 뜬금, 영진 큰 아빠의 품을 거부하사 아빠의 땀을 꽤나 흘리게 만들었지..

말바위 부근에서

말바위 부근에서

삼청공원 입구

삼청공원 입구


말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시내 전경은 시원하더군.. 이곳을 대통령들만 볼 수 있게 출입 통제를 했었다니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흥, 쳇. 다시 삼청 공원쪽으로 내려와서 출출했던 우리는 공원 내 슈퍼에서 라면뷔페(? ^^;)와 김치전 막걸리를 먹었더랬지.. 누군가 그 슈퍼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절대 김치전은 비추라는 것을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병혁이랑 그 아버지

병혁이랑 그 아버지

임양 뭐에 물렸는가?

임양 뭐에 물렸는가?



암튼 배를 채운 우리는 이번엔 부엉이 박물관으로 향했지. 입장료를 내면 차를 한 잔 주고 그 차를 마시면서 그 안을 구경하는 거지. 사실 작은 규모의 까페인데 벽면에 사계 각지의 부엉이 관련 그림, 소품, 글귀들이 있는 거야. 사장님의 콜렉션 감상이랄까. 여기서 병혁이와 뛰어 다니며 조금은 친해졌다 생각했는데 곧 잠들어 버리더군.. 여기서 병혁 부자와 아쉬운 작별을...

 
부엉이 박물관 앞에서

부엉이 박물관 앞에서


돌잔치를 다녀온 문희언니와의 급만남. 우리는 정독 도서관으로 향했어- 한옥 마을을 먼저 보러 갔던 거 같기도 하고....ㅠ.ㅠ    정독 도서관 가는 길을 따라 담벼락에는 싯구들이 적혀 있었는데 신선한 느낌이었어. 매화 느낌의 -맞나??- 점들이 담벼락에 점점이 그려져 있기도 했어. 어쨌든 도착한 정독 도서관은 휴관이었더랬습니다.. 에휴.. 오늘 왠지 자꾸 꼬이는데?

정독 도서관 앞 천진포차와 먹쉬돈나를 그저 바라만 보며 지날칠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 다음에 와서는 모두 먹어버리고 말테다.

이번에는 한옥마을로 이동. 사실 한옥마을이래서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고 무언가 민속촌 같은 것은 기대했었는데 결론은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실제 사람이 살고 있고 살고 싶게 만드는 집들과 금방이라도 붕괴되어 버릴 것 같은 낣은 한옥들이 길 양쪽으로 머리를 맞대로 죽 늘어서 있었어. 어제와 오늘이 함께 살아 숨쉬는 느낌이었어. 일행들 모두 이 동네에서 한 번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나눴지 - 이런데는 전세가 얼마나 하나? 차가 있어야 할거야, 생각보단 안 비쌀 껄...등등등..


뜬금 오빠가 발견했따는 포인트에서 한옥 마을을 내려다 보는데 정말 기와 끝들이 파도 치듯이 머리를 맞대고 있더군.. 그야말로 그냥 그림 같고, 작품 사진 같은 모습이었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에 꿍 와 닿았어. 이런 곳을 자본과 개발의 논리로 부수려 하는 생각들을 하다니. 부수로 잃고 후회했던 그 많은 일들을 그들은 잊은 걸까? 아니 애당초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겠지?

다시 안국역으로 내려와서 약속이 있었던 임양 언니와 작별을 했지.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결국 인사동으로 이동. 그럭저럭 깔끔한 밥집에서 모듬전과 저녁을 간단히 먹다가 급 전에 삘이 꽂힌 우리는 공덕시장으로 자리를 옮겼어. 푸지게 전과 튀김을 먹으며 토요일 저녁을 즐길 때 영민오빠와 희둥언니가 합류했지. 술자리 게임들로 - 소주 병뚜껑 숫자 맞추기 놀이 정도? ㅋㅋ-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일찍 가야 했던 뜬금오라방과 문희언니는 여기서 안녕~~

영민 뒷풀이 참가

영민 뒷풀이 참가

희둥 뒷풀이 참가

희둥 뒷풀이 참가


영진, 영민, 희둥, 용, 째임스는 장대포로 가기로 급 결정. 헌데 택시는 네명 밖에 못 타니 가위바위보로 한 명의 탈락자를 결정하기로 했지. 그리하여 희둥은 혼자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는데 장대포는 금일휴업이라는.. 근처 포장마차에서의 마지막 술자리로 느리게 걷기의 첫 걷기는 끝이 났지..

그날 영진 오빠와 나는 꼬박 12시간이 넘게 함께 있었더군. 평소 운동부족으로 인해 3시간 가량 걷기를 한 것이 며칠 근육통을 가져오기도 했지. 하지만 도심 속에서 푸른 산을 거닐 수 있고, 바쁜 오늘 속에서 어제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삼청동 걷기.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행복, 특히나 병혁이로 인해 더 즐거울 수 있었던 시간..

조금 더 천천히 많은 대화를 나누며 걷지 못 한 것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 편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지.

느리게 걷기 Ver2.  함께 걸어 보지 않을래?

_재임스(느리게 걷기)

코스를 보고 싶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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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친다 2009/07/21 16:33
"민주주의의 희망, 서울시민이 지킬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서울시민, '나도 시국선언'에 함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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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학생, 청년, 종교단체, 영화인들, 블로거들 등등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지요.  그런데 정작 어디에 속해있지 않아 참여할 길은 없는데, 속은 터지는 서울시민들도 시국선언을 하고 싶을거라 마음대로 생각하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서울시민 시국선언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혼자하면 심심할까하여 서울지역의 청년단체들과 함께 준비해서  다음의 4개 요구안을 걸고 12여일 동안 서울에서 2000여명의 서명과 310만원 정도의 모금을 받아 한겨레 신문에 하단광고도 냈습니다.
(돈이 조금 남아 17일에는 의견광고도 냈어요.)

청년회는 일주일간 매일 계획을 짜서 게으름을 깨워 간만의 서명전을 했습니다. 광고가 나간 후 서명해주신 시민분들에게 쭉~~문자를 돌렸더니, 응원문자도 많이 받았습니다.

서울시민들의 마음을 안다면 대통령도 쫌!!!!! 정 안되면 이비인후과 진료권이라도 끊어줘야 할까요.
 
서울시민 요구안
  1. 대통령의 사과와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한다.
  2. 검경을 앞세운 강압통치 중단 및 반민생-반민주 악법 철회를 요구한다.
  3. 부자편향 정책 중단과 서민살리기 정책 최우선 시행을 요구한다.
  4. 남북 간의 어떠한 형태의 교전 반대 및 남북 간의 평화적 관계회복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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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9년 7월 10일자 신문 10면) 하단 광고>

시국선언운동 서명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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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

대학시절은 1000원 짜리 팩을 팔고 서명을 받기 위해 뛰어다니던 일들이 일상이었지만 30이 넘은 지금 그 동안의 생활은 서명테이블 앞의 나를 한없이 민망하게만 만들었다. 과연 실제로 많은 이들이 서명을 해줄까? 넷상의 열풍과 거리의 공기는 온도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들을 품은 채 서명을 받기 위해 전단지를 나눠 주고 설명을 하면서 생각했던 이상의 호응을 발견했다면 과언일까? 많은 서명은 아니었지만 무심한 듯 지나치는 사람들의 지나침 속에서 숨겨진 지지를 느꼈다. 앞으로 3년, 일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퇴행의 시대를 다시 앞으로 돌려낼 근거와 힘을 대중으로부터 얻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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